살아오면서 세상의 끝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은 지금이 처음이다.
과거 역사 속 어느 기록에도 지금처럼 심각했던 적이 있을까 싶다.
또 다른 의미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타고난 본성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춰보았다.
자신의 이기와 욕심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즉각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위기의 순간은 어떨까.
나는 소방대원들을 가장 존경한다.
직업으로서 희생하고 봉사정신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단순하게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면 아마도 이런 일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급박한 상황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데도 몸을 사리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목숨을 살리러 달려든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위기의 순간을 몸으로 직감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씁쓸해지고 한 숨 짓는 뉴스 속에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사람을 구한 뉴스가 전해질 때면
아주 잠시
'그래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야'
'대단하다.'
'어떻게 본인도 위험했을 텐데 나설 수 있었을까 '
이렇게 생각이 스치면서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코로나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힘든 시기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 아프고 고통의 시간이 된다.
영국의 프롬 마을에서는 고립되고 소외되는 사람들에게 주민들 마을의 의료진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치유하는 데 뜻을 함께한다.
그것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측은지심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이며 타인의 불행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는 마음이다.
동정심
맹자는 이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마음이라고 했다.
정치 경제적으로 사회 안전 복지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도 내 옆집 내 주변에 사람에게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신경을 쓰는 것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사실 알고 있지 않을까. 위기의 순간의 모두가 하나 되어 흐름을 바꾸고 다시 일어서는 민족이기에
아마도 또 다른 힘든 시기가 오더라도 우리는 아마 이 영국의 마을보다도
이미 수많은 역사의 아픔 속에서 일어설 것이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날마다 마음을 챙기고 돌보면서 자신의 본성에 대한 부정적 가정을 바로잡고,
내면과 주변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인의 삶을 컴패션 프로젝트로 바라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구도 홀로 외롭게 병들지 않도록 내용중에서 발췌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에게 조금씩 마음을 써준다면
아주 조금 따뜻한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글에 자료를 더하기도 하는데 내용 중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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